스포일러 있음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압도적인 연출로 풀어낸 수작"
죽음을 다루는 작품은 많은 작품 중 하나이지만 나름대로의 임팩트가 있었던 작품.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기는 하지만 이정도면 명작의 반열에 들 수 있지 않나...
#1
혼자서 본 하늘은 날 삼킬 듯 무서웠다
와타리와 본 밤하늘은 변덕스러웠고
쓰바키와 본 밤하늘은 한없이 반짝이면서도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너와 보는 밤하늘은 어떨까?
배경에 대한 묘사가 작품과 잘 어우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작품에 별이라는 상징적인 소재가 등장한다. 공연 시작 전에 카오리가 코우세이에게 ‘반짝반짝 작은 별’을 언급하며 무대 위에서 별이 비출 것이라는 말을 할 때, 위에 적어 놓은 코우세이의 독백 장면에서도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등장시키며 전후의 이야기 내용을 함축한다. 표현력이 정말 뛰어난 작품이다. 별이 가득한 밤하늘뿐만 아니라 반딧불이나 벚꽃, 눈과 같은 계절적 요소들 또한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하여 분위기를 확 고조시켜 준다. 거기에 피아노를 연주하는 신에서의 대사와 구도, 치고 들어오는 음악의 어우러짐까지 만족스러웠다. 연출 하나만 놓고 본다면 애니메이션 전체를 놓고 경쟁해도 손에 꼽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뛰어났다. 압도적인 연출이 살짝 식상한 사각관계와 성장물 스토리를 하드캐리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대사도 하나하나가 시적이고 주제와도 참 잘 어울렸다. 타임라인에서 어느 부분을 클릭해도 “캬~”하고 혼잣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명대사이다. 뭐 물론 냉소적으로 보면 요새 인스타그램 감성 느낌이기도 하고 좀 오글거리는 게 맞지만, 작품에 몰입하면 그런 생각이 잘 들지 않을 정도로 전체적인 짜임새가 잘 만들어져있다. 너무 감각적이어서 밤하늘을 묘사하는 부분은 과장 좀 보태면 마치 ‘설국’을 읽고 있는 것 같은 느낌조차 들었다. 여기에 다 담기 힘들 만큼 이미지적으로, 언어적으로 참신하고 멋진 묘사가 정말 많은 작품이었다(하나하나 언급하기에는 너무 많기 때문에 넘어가도록 하자. 무슨 논문을 쓰려는 것도 아니고). 이처럼 작품과 잘 어우러지는 참신한 묘사는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크게 높여준다. 내용적인 요소는 좀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애니메이션으로서 주제 전달을 위해 이미지를 활용하는 방법이나 전체적인 연출, 함축적이고 아름다운 대사는 흠잡을데 없었다. 솔직히 이정도로 뛰어난 작품 잘 없다.
#2
연애 요소도 있지만 성장물로서의 면모가 더 강하다. 연애 요소도 마이너스로 느껴질 정도는 아니지만, 이 작품에서는 작가가 그렇게 중요하게 부각시키려 한 것 같지 않다. 보통 러브코미디에 등장하는 문화제, 불꽃놀이 등으로 한두 회차를 때워먹는 것이 없어서 스토리가 꽤 타이트하게 느껴졌다. 흔한 러브코미디의 포맷으로부터 벗어나서 짜임새 있는 성장물을 만들어 보려고 한 것 같고, 나름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기숙학교의 줄리엣’이 성장물과 연애물 비중이 5대5 정도였다면 ‘4월은 너의 거짓말’은 9대1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상 성별만 남녀이다 뿐이지 연애 감정보다 서로가 의지하면서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모습을 담은 성장물이다.
#3
연애 요소는 그리 참신하지는 않았다. 코우세이, 카오리와 쓰바키, 와타리의 사각관계(물론 넓게 보면 코우세이의 제자, 경쟁자, 등등 이름이 기억도 잘 안나는 등장인물들도 있긴 하지만) 사각관계는 '메종일각', '우리들은 모두 카와이네', '기숙학교의 줄리엣' 등등 이미 고전적인 러브코미디에서부터 수 차례 정립된 더 우려먹을 것도 없는 사골이지만 이런 식으로 곁들여서 포인트를 주는 건 나쁘지 않다. 비슷한 느낌으로 사각관계를 '곁들인' 느낌이 드는 작품으로는 '빙과' 정도가 있겠다.
#4
같은 죽음을 다룬 작품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와 유사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5
일본 소설 ‘이치고 동맹’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이치고 동맹’의 내용을 모르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기는 하나, 이야기 전개에 크리티컬한 정도의 복선은 아니다. 만약 보다가 ‘라벨’이나 ‘왕녀’얘기가 갑자기 왜 나오는지 모르겠어서 거슬린다면 ‘이치고 동맹’의 줄거리를 찾아보고 오면 된다.
#6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반부부터 경쟁자들이 나오면서 임팩트 있는 메인 스토리 라인이 살짝 풀어지는 느낌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갑자기 딴 길로 새는 느낌이다. 회상 신이 나올 때는 기본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그 사람의 과거에 관해 궁금한 상황이어야 하는데, 아예 처음 등장한 경쟁자들의 회상 신이 나와 버리니 너무 뜬금없게 느껴진다. 보통 주인공 회상 신은 주인공의 과거에 대한 의미심장한 복선을 충분히 깔아놓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4월은 너의 거짓말' 같은 경우에는 약간 이 부분이 미스 같다. 회상 신의 등장 타이밍이 너무 일렀다.
#7
카오리의 죽음에 대한 복선 회수가 인상적이었다. 세세한 부분에서 복선이 많아서, 전체적인 완성도가 매우 높게 느껴진다. 작품이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주제를 전달하게 되면 독자들을 그 세계로 빨아들일 수 있다. 1화부터 미리 결말을 정해놓고 만든 것이라는 게 느껴지고, 또 그만큼 빌드업과 복선 회수에 공을 많이 들였다는 사실도 느껴진다.
#8
작화 자체는 흠 잡을 데 없지만, 정지 장면으로 때우는 부분이 꽤 있었다. 이건 크게 거슬리는 요소는 아니지만, 좀 더 공을 들였으면 어떨까 싶기는 하다. 살짝 아쉬운 부분.
#9
카오리와 쓰바키의 성격을 남들 앞에서는 억지로 잘 보이려 하는 성격으로 설정한 덕에 작품의 완급 조절이 매우 잘 되었다. 한결같이 진지하지만도 않고, 한결같이 가볍지만도 않다. 너무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하면 카오리나 쓰바키의 폭력소녀 기믹으로 적당히 때워버리고, 너무 가볍다 싶다가도 서로가 속마음을 털어놓는 신을 한번씩은 등장시켜서 작품의 긴장감을 쭉 끌고 간다. 긴장감을 줬다가 풀었다가 하는 완급조절 자체는 작품 자체의 임팩트를 높여주는 요소로 내가 작품 평가에 있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이다. 그런 점에서 실제로 임팩트가 있는 작품이었고, 구글에 ‘4월은 너의 거짓말’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4월은 너의 거짓말 같은 애니’가 뜨는 것은 상당히 대중적으로 큰 여운을 남긴 작품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 방식이 다소 식상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항상 조금 진지해질려고 하면 ‘폭력 소녀’기믹을 꺼내서 긴장감을 풀어주는 전체적인 구성이 반복되다보니, 후반쯤 가면 너무 뻔한 느낌이 들기는 했다. 서사적인 긴장감을 풀어주는 방법이 한 가지가 아닌데, 그 부분을 좀 더 고안해 봤으면 어땠을까? 또 긴장감을 너무 빨리 풀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좀 더 끌고 가도 될 것 같은데, 너무 빨리 풀어버리는 것 아닌가. 이것은 그러나 통화 정책의 출구 정책 타이밍만큼이나 어려운 것이고 또 개인차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서는 길게 말하지 않도록 하겠다. 완급조절에 관한 얘기는 ‘기숙학교의 줄리엣’리뷰에서 더 길게 해 놨으므로 그쪽을 참조하면 좋겠다. 확실한 건 ‘4월은 너의 거짓말’이 ‘기숙학교의 줄리엣’보다는 완급조절 면에서 훨씬 나았다.
제목을 매 화 마지막에 등장시키는 연출도 여운을 길게 남기는 데 도움이 되는 장치였다. 좋았다.
#10
이 만화를 중학생때 봤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분석적으로 접근하기보다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을텐데...라는 점에서.
#총평
완성도 : 4.8/5.0
임팩트 : 4.8/5.0
참신함 : 4.0/5.0
누구나 재밌게 볼 수 있지 않을까. 흠잡을 데 없는 성장물. 러브코미디가 아닌 일본 만화 중에서 추천을 해 달라고 하면 이 작품이 꽤 높은 우선순위로 떠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