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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리뷰/만화

카네다 요스케 ‘기숙학교의 줄리엣’ 리뷰

스포일러 있음

 

출처: https://pbs.twimg.com/media/CvvGrYPW8AAnJbc.jpg

"'소년만화스러움'을 잘 살려낸 수작"


지난 2019년에 완결이 되고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 8월 현재까지도 불법 만화 공유 사이트에서 상위권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인기작이다. 전쟁으로 적대적인 두 나라를 배경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이 금지된 사랑을 하게 된다는 내용인데, 겉보기와는 다르게 판타지적인 요소는 딱히 없다. 그냥 모두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클리셰 덩어리 러브코미디 만화이다. 불꽃놀이, 문화제, 해변가 등등 '러브코미디'스러움이 넘치도록 충분하기 때문에 판타지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해서 걱정할 것은 없다. 식상하긴 하지만 기대치가 낮았던 탓일까, 필자에게 전체적인 내용 구성, 완성도 면에서 만족도가 생각보다 꽤 높았다. '오등분의 신부', '나는 공부를 못해' 등의 경쟁작과는 비교 자체가 미안할 수준이다.


#가벼운 분위기

 
금지된 사랑이라는 작품의 소재가 갖는 특성상 두 인물의 사랑이 전개되면서 사회적인 갈등이 따라오는 것은 필연적이다. 하스키, 로미오의 형, 줄리엣의 부모님 등 주변 인물이 두 사람의 교제 사실을 알게 된 후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이런 필연적인 갈등이 일어날 때마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적당히 때워 버리는 경향이 있다.
 
우선 등장인물들의 무게감 자체가 너무 가볍다. 굳이 따지자면 이누즈카 로미오의 형 정도가 그나마 무게감이 있다. 하스키, 레온 같은 인물들은 애초에 개그 캐릭터이니 말할 것도 없고, 사이벨처럼 꽤 높은 위치에 있는 캐릭터도 갭 모에로 이상한 취미(곰돌이 팬티라던지...)를 등장시키며 금방 개그 캐릭터 취급이 된다. 그나마 무게감이 있는 로미오의 형이 교제 사실을 알게 되는 에피소드조차도 그렇다. '오오, 뭔가 일어나는건가!!'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보다 보면... 금방 김이 빠진다. 한 두화 만에 금방 화해하고 마무리된다.
 
좀 긴장감이 생길 듯 하면, 바로 갈등이 끝나 버린다. 계속해서 이러한 전개가 반복되다 보니 뭔가 일이 터질 것 같은 급박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장면에서도 ‘어차피 이번에도 금방 해결되겠지 뭐ㅋㅋ’라는 생각부터 든다. 그래서 사실상 치유물처럼 가벼운 분위기가 유지되고, 전체적으로 술술 읽히는 ‘아무 생각 없이 읽기 좋은’만화이다. 전체적으로 분류상 개그 만화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개그의 비중도 크고, 취향에 잘 맞는다면 재밌고 부담스럽지 않게 완결까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완전 치유물인 것 처럼 써 놨지만 후반부에는 전교생 앞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폭로되며 그동안 쌓여왔던 갈등에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며, 결말 근처에서는 나름 꽤 진지한 분위기가 되기도 한다. 시종일관 치유물 스럽지는 않다는 것이다. 완결까지 보고 난 뒤에는, 오히려 초중반에 갈등 요소들을 얼렁뚱땅 넘겨버리는 점이 의도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부에는 조금씩 갈등의 씨앗만 뿌리면서 적절히 편안한 분위기를 유지하다가, 후반에 진지하게 갈등을 마주하게 되면서 점층적으로 긴장감을 쌓아 올리는 구성이 참 전체적으로 담백하다. 이처럼 기승전결이 좋은 작품은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된다. 이 부분은 좋은 평가를 주고 싶다.(사실 최근에 나오는 러브코미디 치고 이렇게 결론부 빌드업을 신경써서 탄탄하게 하는 작품은 몇 없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같은 소년만화 범주 내에서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고, 본격적인 청년지 이상의 만화와 비교했을 때는 많이 가벼운 느낌이 드는 것은 맞다.



#깔끔한 결말, 성장물로서의 면모

 
결론부가 상당히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사실, 진짜 까놓고 말하자면 극찬을 할 정도는 아니긴 하다. 잘 쳐줘야 평균 이상정도? 그래도 요즘 나오는 점프 계열 러브코미디 작품들과 후반 스토리의 완성도를 비교하면 선녀도 이런 선녀가 없다.(대표적으로 ‘오등분의 신부’, ‘우리는 공부를 못해’, ‘니세코이’)

 
내용상 메인 여주는 거의 확정되어 있고, 매력적인 서브 여주인공들이 등장한다는 면에서는 ‘토라도라’, ‘니세코이’와 어느정도 비슷하다. 하지만 남주인 이누즈카가 요즘 시대에 흔치 않은 일편단심 캐릭터라는 점이 다행스럽다. 덕분에 히로인을 두고 미친듯이 경쟁이 벌어지는 ‘오등분의 신부’나, 아예 막장드라마 컨셉으로 끝을 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긴 ‘도메스틱한 그녀’에 비하면 훨씬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감상할 수 있다. 서브 여주인공들도 다들 매력적이라는 것도 하나의 장점이다. 흔히 여주가 여러 명 등장하는 럽코 만화는 중간중간 인기도 없고 별 매력도 없는 서브 캐릭터들끼리 억지로 엮는 ‘쉬어가는 화’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럽코물을 많이 본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기숙학원의 줄리엣’은 서브 여주인공 중에 가장 비중이 큰 코마이 하스키를 비롯하여 샤르 왕녀, 레온 등등 다양한 서브 여주인공이 등장하지만, 그중 한 명도 억지로 밀어넣은 느낌이 없다. 다들 겹치는 요소 없이 매력적인 캐릭터이고, 그래서인지 인기투표 같은 것을 해도 다들 평타이상의 성적은 내는 편이다. 하지만 다른 작품과 비교했을 때 사실 캐릭터가 엄청나게 개성이 있다거나 그런 것은 또 아니기 때문에 다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감이 드는 것은 한계점이긴 하다.

 
갈등과 복선도 나름대로 깔끔하게 해소되고 회수되어 끝까지 담백한 느낌을 받았다. 기본기가 충실하다는 면에서 ‘정석적인 러브 코미디 수작’이라고 불러줄 만 하다. 내 개인적인 느낌으로 비슷하게 느껴지는 작품이 하나 있었는데, 지난 2013년에 '이 만화가 굉장해!'에서 1위를 차지했던 '내 이야기!'라는 만화이다. 파워풀한 남주, 겉모습이 작지만 머리가 좋고 친절한 여주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주인공들의 성격, 외형도 거의 판박이고, 남주가 일편단심이라는 점, 쭉 치유물스러운 분위기로 전개되면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장점을 개성있는 인물들과 코미디로 때운다는 점 등 굉장히 유사점이 많다. ‘기숙학교의 줄리엣’을 재밌게 본 사람이라면 ‘내 이야기!’도 한번쯤 보면 좋을 것이다.

남주인 이누즈카의 성장이 상당히 부각되어, 성장물 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남주의 성격은 꽤 마음에 들었다. '니세코이'의 이치죠 라쿠처럼 하렘물 특유의 둔감함도 없고, ‘내청코’의 하치만이나 ‘빙과’의 호타로처럼 쓰잘데기없는 염세주의도 없다. 요즘 세상에 진솔함 하나만으로 밀어붙이는 주인공을 세운 점은 후한 평을 주고 싶다. 진심으로 뭔가를 대하는 사람을 보면 누구라도 응원하고 싶어지지 않는가? ‘세상을 바꾼다’는 신념으로 끊임없이 도전하는 이누즈카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소년 만화’에서 지겹도록 우려먹는 전형적인 클리셰이기는 하다. 그래도 뭐. 클리셰도 활용하기 나름이다. 필자는 이정도면 독특한 설정의 럽코와 클리셰를 버무려서 꽤 수작을 뽑아냈다고 본다.


#다소 억지스러운 전개 


주구장창 장점만 읊었지만, 사실 전개가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위에서 이미 말했지만, 갈등이 일어날 때마다 너무 금방금방 ‘메데타시 메데타시’스럽게 끝나버리는 경향이 있기도 하고, 전체적인 스토리도 좀 억지로 해피 엔딩으로 몰아간 느낌이다. 주변 인물들의 심경 변화가 너무 간단히 일어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갈등이 생기기까지의 과정은 뚝딱뚝딱 개연성이 좋은데, 해결되는 과정이 상당히 좀... 김빠진다. 물론 소년 만화이기도 하고 해피 엔딩이 배드 엔딩보다는 좋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해피엔딩까지 가는 길을 조금만 더 탄탄하게 짜맞출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굳이 신경쓰고 보지 않는다면 크게 거슬리지는 않을 것이다. 개연성 면에서 아쉬운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을 개그나 억지 요소로 적절히 잘 때웠기에 대중성 면에서 본다면 나쁘지 않다.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로 전개되는 작품들은 아무래도 진입 장벽이 높기 마련이니 가벼움 또한 나름의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총평

 

스토리(내용의 참신함, 전개의 치밀함, 메시지) : 1.0/2.0

완성도(기본기, 주제의 일관성) : 1.8/2.0
작화(그림의 퀄리티, 작붕의 유무) : 0.8/1.0

총점 : 3.6/5.0

다소 무거워 질 수 있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느낌을 잘 살려서 부담스럽지 않은 전형적인 러브코미디 만화. 스토리는 어느 정도 소년만화스럽게 억지스러운 면이 있지만 전체적인 완성도가 나름 괜찮았다.(나름이다. 정말 나름.) ‘정석적인 러브 코미디’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작품. 성장물적인 요소를 적절히 녹여낸 것이 매력적인 요소이다. 본문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작화의 수준도 상당히 높고 작붕도 없으므로 편안하게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가벼운 분위기가 러브코미디 입문작으로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경쟁작들이 워낙 개차반이라 상대적으로 고평가된 느낌도 없진 않지만... 이미 많은 작품을 접한 사람도 실망시키지는 않을 퀄리티를 가졌다고 할 정도는 되겠다.